고 김○희 성도님의 화장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신앙고백: 사도신경
본문: 갈라디아서 3장 1-14
찬송가: 438장 (통495) 내 영혼이 은총입어
대표기도: 담당자가 없을 경우 집례자가 기도 (장손녀가 담당함)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하게도 고 김○희 성도님, 우리 할머니께서 천국 가시는 일정을 입관부터 발인, 마지막 화장전 예배까지 담당하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나눈 모든 말씀에서 직접적, 간접적으로 천국 소망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입관예배에서 사망은 죄의 값, 심판의 결과가 아닌 새로운 시작, 예수 그리스도가 본보기 되어 죽음과 부활이라는 하나님의 사랑, 은혜를 나태내는 의미로서 하나님의 품에서 영원한 삶을 사는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발인예배에서는 직접적으로 고 김○희 성도님을 통해 증거된 성령을 통한 천국 소망의 확신을 전해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에서 왜 천국 소망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말씀을 열면서 또 말씀을 닫도록 하겠습니다.
구원과 천국, 부활 소망 목사이면서도 때론 잊어버린다. 허나 최근 아버지를 하늘나라에 보내드린 이후, 기독교의 본질인 구원과 천국 부활에 대한 본질적인 소망을 다시금 마음 속 깊은 곳에 새겼다. 사랑하는 이를 다시 보고싶은 마음, 사랑하는 이와 영원히 함께 하고 싶은 마음, 있을 땐 모르는데 없으니 그 소중함이 무엇인지 알아차렸을 때 밀려오는 후회와 아쉬움, 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는 한탄이 나를 괴롭게 할 때 본문을 묵상하면서 가슴속 깊은 곳 내면에서 더 확실하기 원하는 건 바로 구원과 부활 소망이다. 그리고 천국에서 영원한 삶이다.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그럼 누가 구원을 얻으며 천국에 거하며 부활을 할까 정의의 사도? 행실이 바른 사람? 도덕적 기준이 확립된 사람? 지적인 혹은 영적인 성찰은 이룬 사람? 아니다. 믿음이다. 어떠한 믿음인가? 착한사람이 천국 간다고 믿는 사람? 교회에 잘 나간 사람이 천국 간다고 믿는 사람? 아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었음을 믿는 사람이다. 내가 잘나서 내가 의로워서 구원 천국 부활을 꿈꿀 수 없다. 오직 십자가 예수님을 믿을 때 꿈꿀 수 있다. 사랑하는 이를 다시 보고 싶다는 소망은 예수를 통해 이루어진다. 바로 우리 고 김○희 성도님이 성령의 감동에 반응해 예수를 믿고 천국에 유하는 소망을 이룬 것처럼 우리 남은 가족도 그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이루는 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어머니, 할머니를 다시 만나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본문에서 아브라함을 통한 복음 전파를 이야기하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을 예로 들기가 참 조심스럽다. 여기 대다수분들이 누구라고 이름을 꺼내면 처음 들어보거나 들어봤어도 이름만 아는 정도로 생소하기 때문이다. 교회 청년부에서 성경 스피드 퀴즈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중 문제로 하나가 나온 지문이 바로 야곱이었다. 이삭의 둘째 아들로 장자권을 팥죽으로 산 욕심많은 인물로 후에 하나님과 씨름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스라엘이 바로 야곱이다. 이런식으로 야곱을 설명할 줄 알았는데, 청년들에게 야곱은 야체곱창의 준말이었다. 그들에게는 야곱이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산 이스라엘이 아니라 야채곱창으로 더 잘 알려져있었다. 교회 다니는 청년도 이럴진데 하물며 교회 문지방도 밟지 않은 이들에게 성경 인물을 에로 들면 잠오는 소리가 될 수 있어 무척 조심스럽다.
허나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여기서 한 번 해야겠다. 그는 성경에서 그리고 후손들에게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며 존경받는다. 그러나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성경에서 찾아보면 찾기가 어렵다. 오히려 이런 사람이?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대표적인 일화로 자기 생명이 위협을 받자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정복자에게 보낸다.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여자 몸종 하갈을 들여 아이 이스마엘을 낳는다. (이스마엘은 후에 이슬람교의 뿌리가 되어 현재까지 종교분쟁을 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후대에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며 존경을 받는다. 더군다나 그에게 하나님은 복의 근원으로 삼아주겠다는 약속까지 한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런 약속을 했을까?
우리의 사고는 이렇다. 어떤 행동의 보상으로 복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무언가 잘 한게 있으니까 존경받고 복을 받는다는 전통적인 사상인 잉과응보를 떠올린다. 하나님은 보상(reward)으로 무엇을 주시지 않는다. 그냥 준다. 그냥 복도 주고 그냥 믿음도 준다(gift). 그 초대에 그 선물에 우리가 반응만 하면 된다. 바로 우리 할머니, 우리 어머니 고 김○희 성도님께서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에 반응했듯이 말이다. 실제로 본문에서 아브라함이라는 믿음의 선조를 통해 온 인류에게 믿음이 전해진다는 이 선언은 바로 어떤 행함이 아닌 어떤 전적인 은혜로 주어진 믿음을 소개한다. 고 김○희 성도님의 소천을 계기로 기독교라는 종교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이 자리에 앉아 예배에 참가하게 된 이들에게 주어졌다고 확신한다. 어머니, 할머니의 어떤 의가 아닌 하나님이 어머니, 할머니에게 준 은혜로 그 은혜가 장례식장과 우리 가족에 이어진다. 마치 본문의 아브라함처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실제로 장례를 치루는 동안 그 놀라운 은혜가 성령의 초청이 있었다. 그에 반응한 이가 있다. 낯설고 경황이 없어 무슨 일을 하기 어려운 장례 절차를 도와주는 장례지도사님이 조금 전에 와서 하는 말씀이 “교회에 나가야 겠다”라는 고백이었다. 사연을 들은 즉, 지금껏 장례지도사 일을 하면서 한 번도 기독교식 장례를 치뤄본 적이 없다고 한다. 매번 불교식 또는 전통 유교식으로만 장례를 치뤘었다고 한다. 허나 이번에 처음 기독교식 장례를 치루면서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하고 특히 마지막 발인식 때, 운구하면서 틀어놓았던 찬양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라는 곡을 듣는데 가사 하나하나가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정말 좋은 곳에 가시는 구나라고 생각이 들면서 본인이 다 눈물이 났다고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이런 일이 처음 이라며 교회에 나가야 겠다는 고백을 했다. 가시는 날까지 한 영혼의 마음에 성령이 살도록 천국 복음의 씨를 뿌렸다. 바로 그 씨앗의 열매가 고 김○희 성도님을 통해, 이 장례식을 통해 맺히고 있다.
지금껏 천국 소망에 늘 뒷전 이었음을 반성하며 이제는 천국 소망이 유일한 어머니, 할머니를 만나는 통로 임을 기억하고 천국을 향한 질주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그렇듯 나의 어떠한 의가 아닌 하나님의 선물인 은혜를 통해서 그 질주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492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찬양 한곡 부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고 김○희 성도님을 그 품으로 보내드리면서 남은자에게 숙제로 남겨준 “왜 천국소망 인가”를 상기하며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다. 기도와 축도로 이 예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