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관예배 | 고린도전서 15장 50-58절 “사망 is not 죄의 삯, but 예수그리스도, 구원, 부활, and 천국 소망”

예배에 앞서, 삼가 고 김○희 성도님께서 하나님의 따뜻한 품에 영원한 쉼을 누리길 기원합니다. 지금부터 고 김○희 성도님의 입관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신앙고백: 사도신경

제목: 사망 is not 죄의 삯, but 예수그리스도, 구원, 부활, 천국 소망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50-58절
찬송가: 492장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대표기도: 담당자가 없을 경우 집례자가 기도 (외손녀가 담당함)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장 50-58절]

고 김○희 성도님의 죽음을 애도하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내 슬픔에 잠긴 남아 있는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따듯한 하나님의 품에서 편하게 쉼을 누릴 고 김○희 성도님을 떠올리며 죽음이라는 감히 입에 올리기도 무거운 이 두 글자가 오히려 이 자리에 모인 저와 유가족과 친지 여러분들에게 희망과 소망이 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 많은 이별을 경험한다. 어떤 이별은 기약이 있고 또 어떤 이별은 기약이 없는 이별이다. 죽음도 이별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죽음을 기약없는 이별이라 여기기 때문에 더욱 슬퍼하고 더욱 무서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 죽음에 정복 당하고, 죽음을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기에 더욱 두려워한다. 사람이 도저히 이길 수 없다 생각하는 그 죽음에 대해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남긴 서신의 내용을 가지고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로 잡아 보고자 한다.

본문배경 [고전15:12-13] 교회 내 퍼지는 부활 부정 논란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오늘 본문에서 사망에 대해서 두려워하거나 그것에 짓눌리는 표현이 아닌 사망을 오히려 극복하고 꾸짖는 표현을 사도바울은 한다. 사실 사망의 짓눌리거나 사망에 메인다는 것은 본문에 보면 죄의 삯, 율법이라 일컫는 죄의 값을 치룬다는 그 의미이기에 사망을 실로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심판의 결과로 여긴다. 실제로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 즉 은혜가 아닌 나름의 규칙, 나름의 이념, 나름의 사상들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사망이 죄의 값이 될 수 밖에 없다.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나 바울은 그 사망을 꾸짖는다. 사망을 이긴다.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죽음 그 죽음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기존의 죽음의 의미를 재해석해줬기 때문이다. 더 이상 율법이 아닌 결과물이 아닌 심판이 아닌 예수님의 죽음은 누군가의 대속이었고, 생명이었고, 누군가의 사랑이었다. 바로 그 죽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고, 대속이 있었고, 하나님의 생명이었다. 예수님으로 인해 죽음이라는 심판의 결과물에 사로 잡혔던 우리가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 구원, 부활, 영생을 동일하게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사도바울은 감히 그 사망을 꾸짖을 수 있었고 사망에 대해 승리 선언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어머니, 할머니의 죽음을 단순히 슬퍼만하고 이제 끝이라 생각하고, 영원한 단절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망을, 어머니, 할머니의 죽음을 심판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고 김○희 성도님께서 사는 동안 자녀와 손주들에게 사랑을 보여주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요한1서 4:7)이며 허다할 허물과 죄를 덮는다(베드로전서 4:8). 고 김○희 성도님은 죄의 값으로 심판을 받아 사망의 결과에 이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랑을 당신이 살아하는 이들에게 행하며 수고하고 애쓰다 성도님을 부르신 하나님 품에서 쉼을 누리는 것, 즉 그리스도로 인한 승리를 누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은혜로 부활과 영생의 삶을 누린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이 죽음을 꾸짖고 죽음 뒤에 다시 만날 소망을 가질 수 있다.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남은 자들에게 본문이 말하는 것이 있다. 바로 맡은 바 너희에게 주신 것을 성실히 행하는 것,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것, 고 김○희 성도님은 죽음으로 우리 가족으로 하여금 예배의 자리에 모이게 했다. 이 사실이 우리가 앞으로 기억해야 할 성도님이 남겨준 유업이다. 이를 통해 이 가정에 믿는 이는 더욱 하나님의 영광을 쫓을 것이고 믿지 않는 이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게 되어 할머니께서 보여주신 사랑과 사망의 정의를 본문을 통해 부활에서 영원히 하나님 나라 안에서 거하는 소망을 품는 우리가 될 것이다. 여기에 우리 할머니의 빈 자리가 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