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나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속 예수님을 떠올려 보세요. 머리 뒤에는 금빛 후광이 비치고, 새하얀 옷을 입은 온화한 표정의 성인. 우리는 그를 ‘신앙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데 익숙합니다.
하지만 그 금칠을 벗겨내고, 2,000년 전 팔레스타인의 거친 흙먼지 속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한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오늘 이야기할 주제는 신학이 아닌 역사학의 영역, 바로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입니다.
역사적 예수란 무엇인가?
믿음의 예수 vs 역사의 예수
우리가 교회나 성당에서 듣는 예수는 ‘믿음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성경의 덧칠을 벗겨내고, 당시 로마의 공문서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 그리고 고고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예수를 복원하면 어떤 모습일까?”
이것이 바로 ‘역사적 예수’ 연구입니다. 마치 오래된 명화의 덧칠을 조심스럽게 벗겨내어, 화가가 처음 그렸던 원작의 생생한 색감을 되살리는 작업과 비슷합니다.
역사학의 접근 방법
역사학자들은 성경의 기적 이야기나 신학적 교리를 잠시 괄호 치고, 객관적인 증거들을 통해 예수를 재구성합니다. 이들이 사용하는 자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 로마 제국의 공문서와 행정 기록
-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
- 1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의 고고학적 발굴 증거
- 성경 문헌의 역사적 맥락 분석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 미스터리한 인물의 ‘진짜 얼굴’을 추적하는 일은 그 자체로 지적인 모험입니다.
1세기 팔레스타인: 예수가 살았던 시대
절망의 시대, 로마 치하의 유대
예수를 이해하려면 그가 발을 딛고 서 있던 ‘땅’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당시 유대는 평화로운 시골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고, 이 땅의 사람들은 숨 막히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상황의 실체:
- 이중삼중의 세금 부담: 로마 제국에 내는 세금, 성전세, 십일조 등으로 농민들의 소득 대부분이 사라졌습니다
- 토지 상실: 세금을 감당하지 못한 농민들은 땅을 잃고 소작농으로 전락했습니다
- 사회적 혼란: 강도가 들끓고, 반란군(젤롯)들이 로마에 저항하며 무력 투쟁을 벌였습니다
- 종교적 억압: 유대인들의 정체성은 짓밟혔고, 로마 황제 숭배가 강요되었습니다
이 숨 막히는 현실 속에서 나사렛의 한 청년, 예수가 등장합니다.
역사학자들이 동의하는 예수의 3가지 모습
수많은 논쟁이 있지만, 대부분의 역사학자가 “이것만큼은 팩트다”라고 동의하는 예수의 핵심 모습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1. 철저한 유대인, 유대교 개혁가
기독교 창시자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지만, 예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철저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가 싸운 대상은 타 종교가 아니라, 당시 부패한 유대 종교 권력이었습니다.
성전 정화 사건의 진실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며 상을 엎은 사건은 단순한 분노 표출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돈과 권력에 취해 본질(사랑과 정의)을 잃어버린 당대 종교 시스템에 대한 내부 고발이자 목숨을 건 개혁 운동이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단순한 예배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이곳은 유대 사회의 경제적, 정치적 권력의 중심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환전과 제물 판매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겼고, 가난한 사람들은 제사를 드리기 위해 빚을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는 이러한 종교의 타락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유대교의 본래 정신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돌아가자고 외친 급진적인 개혁가였습니다.
2. 하나님 나라의 선포자: 지금 여기의 혁명
“하나님 나라가 왔다” – 위험천만한 선언
예수가 평생 외친 슬로건은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평생 외친 핵심 메시지는 “나를 믿으라”가 아니라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말은 매우 위험한 발언이었습니다. 당시 세상은 ‘로마 황제의 나라(Pax Romana)’였으니까요. 로마 황제는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 칭하며 절대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천국이 아닌 지상의 변혁
많은 사람이 오해하지만, 예수가 말한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저 세상의 천당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로마의 압제가 사라지고, 굶주린 자가 배부르며,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지금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혁명’을 뜻했습니다.
이는 로마 황제가 다스리는 ‘로마 제국’에 대한 정면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예수의 메시지는 단순히 영적이거나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산상수훈의 혁명적 의미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의를 위해 핍박받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로마 제국의 가치 체계를 완전히 뒤집는 선언이었습니다.
로마는 힘과 부와 권력을 숭배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약하고 가난하고 핍박받는 자들이야말로 새로운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이는 체제 전복적인 메시지였습니다.
3. 밥상공동체의 리더, 사회적 혁명가
식탁이 던진 폭탄
예수가 가장 즐겨 했던 일은 ‘밥 먹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파트너들이 문제였습니다. 세리, 창녀, 나병 환자 등 당시 사회에서 ‘부정한 자’로 낙인찍혀 격리된 이들이었죠.
고대 사회에서 식탁을 공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함께 식사하는 것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이는 “우리는 한 가족(식구)”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는 정결법에 따라 누구와 밥을 먹을 수 있는지가 엄격히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차별에 맞선 행동하는 혁명
예수는 이 금기를 깼습니다. 그는 혐오와 차별로 얼룩진 사회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밥상을 통해 몸소 보여준 행동하는 혁명가였습니다.
세리는 로마에 협력하는 민족 반역자로 여겨졌고, 창녀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존재로, 나병 환자는 신의 저주를 받은 자로 취급받았습니다. 예수는 바로 이들과 함께 식탁에 앉았습니다.
식탁 교제의 정치적 의미
이는 단순한 자선 활동이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밥상공동체는 로마 제국과 유대 종교 권력이 만들어낸 차별과 배제의 시스템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대안 사회의 모델이었습니다.
그는 말로만 평등을 외치지 않았습니다. 매일의 식사 자리에서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하고 강력한 혁명이었습니다.
왜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을까?
신앙적 이유와 역사적 이유
신앙적으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역사적, 정치적 사인(死因)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합니다.
로마 제국에 대한 반역죄
예수의 처형 이유는 바로 ‘로마 제국에 대한 반역죄’였습니다.
십자가형은 로마가 노예나 정치범(반란군)에게만 내리는 끔찍한 공개 처형 방식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사형이 아니라, 로마의 절대 권력에 도전하는 자들에게 본때를 보이는 잔혹한 경고였습니다.
로마 총독의 시선
로마 총독 빌라도가 보기에 예수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수많은 군중을 몰고 다니며 ‘황제의 나라’가 아닌 ‘새로운 나라’를 이야기하는 위험한 선동가였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군중들이 그를 ‘왕’으로 환호했다는 사실은 빌라도를 긴장시켰습니다.
유대 기득권의 위협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도 예수는 위험한 존재였습니다. 그가 성전을 뒤집어엎으며 그들의 권위와 돈줄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산헤드린(유대 최고 의회)은 예수를 신성모독죄로 고발했지만, 실제 처형은 로마의 정치적 판단에 달려 있었습니다.
죄패에 새겨진 진실
결국 예수는 종교법 위반이 아닌,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위협한 정치범으로서 처형당했습니다. 그의 십자가 위 죄패에 적힌 ‘유대인의 왕(INRI: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이라는 문구는 로마의 조롱이자, 역설적으로 그가 얼마나 정치적인 인물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 죄패는 “감히 로마 황제에 맞서 왕을 자처한 자의 말로”를 군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단순한 종교적 순교가 아니라, 제국의 폭력과 억압에 맞선 저항자의 처형이었습니다.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추천 도서 4선
역사적 예수를 더 깊이 만나고 싶은 분들을 위해, 한국어로 번역된 필독서 4권을 난이도별로 추천합니다. 이 분야는 학자마다 예수를 보는 관점이 매우 다르므로, 각기 다른 시각을 대표하는 명저들을 소개합니다.
입문용: 마음을 울리는 에세이
『예수의 의미』
- 저자: 마커스 보그(Marcus Borg)
- 난이도: ★☆☆☆☆ (매우 쉬움, 에세이 느낌)
“어릴 적 믿었던 예수는 잊어라.” 저자 마커스 보그는 어린 시절 문자 그대로 믿었던 예수에서 어떻게 역사적 예수로, 그리고 다시 신앙의 대상으로 돌아왔는지 고백합니다.
그는 예수를 ‘영적인 스승’이자 ‘체제 전복적인 지혜의 교사’로 묘사합니다.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라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이 가득해서, 문장이 아름답고 쉬워 역사적 예수 연구에 입문하는 분들에게 가장 먼저 읽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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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용: 소설처럼 읽히는 역사서
『젤롯(Zealot)』
- 저자: 레자 아슬란(Reza Aslan)
- 난이도: ★★☆☆☆ (소설처럼 재미있음)
“예수는 평화주의자가 아니라 거친 혁명가였다!”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예수를 평화로운 사랑의 사도가 아니라, 로마 제국에 맞서 무력 투쟁도 불사하려 했던 ‘거친 혁명가(젤롯)’로 그려냅니다.
학계에서는 다소 논란이 있지만, 1세기 팔레스타인의 살벌한 정치 상황과 풍경을 영화처럼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베스트셀러로, 당시 시대적 배경을 흥미롭게 익히기에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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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용: 역사적 팩트 체크의 끝판왕
『예수와 유대교』 (원제: Jesus and Judaism)
- 저자: E.P. 샌더스(E.P. Sanders)
- 난이도: ★★★★☆ (두껍고 논증이 치밀한 본격 학술서)
“역사적 예수 연구의 흐름을 바꾼 기념비적인 책”입니다. 저자의 주관적인 상상이나 신학적 편견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1세기 유대교 문헌과 역사적 사료만을 바탕으로 예수를 재구성합니다.
샌더스는 이 책에서 예수를 ‘유대교 회복 운동을 이끈 종말론적 예언자’로 정의합니다. 말랑말랑한 에세이가 아니라, 팩트와 논리로 무장하여 “예수는 도대체 누구였으며 왜 죽었는가?”를 파헤치는 묵직한 지적 탐구를 원한다면 반드시 도전해야 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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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용: 신앙과 역사의 균형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Simply Jesus)
- 저자: 톰 라이트(N.T. Wright)
- 난이도: ★★★☆☆ (논리적이고 치밀함)
보수적인 신앙과 진보적인 역사학을 가장 잘 통합한 학자의 수작입니다. “예수가 말한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에 집중하며, 예수가 어떻게 로마 제국을 이겼는지, 역사와 신학을 절묘하게 통합합니다.
예수가 어떻게 로마 황제의 권력과 대결하며, 십자가를 통해 진정한 승리를 이루었는지 역사적으로 풀어냅니다. 신앙인들에게 특히 추천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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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독서 순서
가장 먼저 읽기를 권하는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 마커스 보그의 책으로 마음을 열고
- 레자 아슬란의 『젤롯』으로 당시 시대적 배경을 흥미롭게 익힌 뒤
- 더 깊은 탐구가 필요할 때 E.P. 샌더스나 톰 라이트를 읽으시면 완벽합니다
마치며: 살아있는 예수를 만나다
역사적 예수를 알게 된다고 해서 신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박제되어 있던 신상이 피가 돌고 심장이 뛰는,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으로 다가오는 전율을 느끼게 됩니다.
역사적 예수를 알게 되면, 그가 2천 년 전 박제된 성인이 아니라 지금 우리 시대의 불의와 아픔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뜨거운 청년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부조리와 차별 앞에서, 2,000년 전 샌들을 신고 먼지 길을 걸으며 “약한 자들이 복이 있다”고 외쳤던 그 청년의 목소리는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까요?